스스로 치유의 기적을 보여준 명의 - 전범석 동문님

  의정(醫政)갈등으로 인한 의료대란이 넉 달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와 의료계가 서로 자기주장만을 고집하고 강경일변도로 대립하는 상황 속에서 애꿎은 환자들의 고통만 날로 가중되고 있지요. 안타까운 의료 공백 사태를 바라보면서, 의사의 사회적 역할이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의사라는 직업은 예나 지금이나 선망의 대상입니다. 저희 동문님들 중에도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로 활동했거나 활동하시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모교 총동창회에서 2016년도 발간한 "남성동창명부"의 의료기관 종사자 편에는 대략 줄잡아 500명이 넘는 동문님들이 빼곡하게 등재되어 있지요. 오늘은 출구 없는 의정갈등이 하루속히 수습되어 의사들이 신음하는 환자들의 곁으로 돌아가기를 비는 뜻으로, 우리 의사동문님들 중에서 환자의 고통을 직접 처절하게 경험하신 특별한 의사 한 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전범석 동문님(고26회)은 모교 졸업 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전 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거쳐 국내 최우수 의료진을 자랑하는 서울대병원의 신경과 교수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1993년 태아의 뇌세포를 파킨슨병 환자의 뇌에 이식하는 수술을 국내 처음으로 성공하고, 의료 관련 저서만 9권에다 2000년 이후 10여 개 넘는 재단에서 연구비를 지원받는 등으로, 특히 파킨슨병, 운동장애, 신경퇴행성질환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기에 이르렀지요. 

  그런데 2004년 6월에 정말 어이없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의료계에서도, 학계에서도 전 동문님의 이름이 갑자기 사라지고 맙니다. 주말이면 즐겨 오르던 남한산성 정상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졸도로 쓰러져 전신마비가 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전공 분야인 신경마비 증세로 하루아침에 병상에 눕게 된 동문님은 남다른 정신력과 의학적 지식으로 주치의와 협력하면서 스스로 진단하고 처치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9개월간의 치열한 투병 끝에 기적 같이 일어서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의사로, 교수로 복귀하여 종전과 다름없이 진료와 교육 활동을 계속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환자가 되어 절망적인 고통을 직접 체험했기에 더욱 견고해진 인술(仁術)로서 진정한 의술(醫術)을 펼치실 수 있게 되었다고 할까요. 동문님은 올해 2월까지 서울대병원 파킨슨센터장을 역임하다가 정년퇴임한 후, 현재는 남양주시 현대병원에서 신경과 진료를 맡고 계십니다. 현대병원은 동문님의 이름을 내건 ‘전범석 파킨슨센터’를 운영하고 있답니다. 

  전 동문님이 2009년 10월 자신의 투병 일기를 "나는 서있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아쉽게도 이미 절판이 되어서 그 책을 구해 읽을 수 없었지요. 동문님을 한 번 본 적도 없으니 주위의 지인들에게 귀동냥을 하고 인터넷을 검색해서 동문님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침 많은 언론들이 유명의사로서 직접 치유의 기적을 보여주신 동문님에게 비상한 관심을 쏟았더군요. 어느 언론 인터뷰에서 인생관, 생명관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동문님이 이렇게 담담하게 말씀하십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잖아요. 오직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지금 이 순간밖에 없으니 현재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요. 그래도 인간이 다른 동물보다 번성한 이유는 서로 간에 정보를 교환하며 돕고 살기 때문이라고 해요. 왜 그런지는 몰라도 남을 도울 때 행복감을 느끼고 마음이 편하다는 실험 결과도 있고요. 어쩌면 남을 도우며 사는 게 자기를 위해 사는 일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저는 특히 동문님이 죽음 같은 투병생활의 고통을 회고하면서, "절망, 분노, 원망, 후회, 자기연민, 이런 것들은 우리를 고난에서 구하지 못한다. 고난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대목에 깊이 공감되었습니다. 저도 30대 초반에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엄청 고생한 적이 있는데, 그때 한동안 절망의 나락에 빠져 신을 저주하다가 몇 달 만에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되면서 신에게 비로소 눈물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었지요. 늦었지만, 훌륭하신 동문님의 재기에 뜨거운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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