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 - 박범신 동문님

  남성 동문님들 중에는 문단에 작가로 활동하시는 분들이 여럿 계십니다. 제가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으나, 목회자로서 목회 활동을 하면서 "청동의 뱀"등의 많은 신앙소설을 집필하여 한국 기독교문학의 대표 작가로 잘 알려진 백도기 동문님(고7회)을 비롯해, 소설 "창"의 작가로 유명한 최창학 동문님(고10회), 고려대 국문과 교수로 많은 소설을 발표하신 송하춘 동문님(고13회), 제주도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계신 박상기 동문님(고20회), 그리고 영화 “명량”, “국제시장” 등의 시나리오 집필 작가인 김호경 동문님(고30회) 등을 꼽을 수 있지요. 그런데 남성을 대표하는 작가가 박범신 동문님(고15회)이라는 건 모두 다 익히 아실 것입니다.

  박범신 선배님을 가리키는 수식어들이 많지요. 그 중에서도 특히 '영원한 청년 작가'라는 칭호는 선배님의 트레이드마크나 마찬가지인데, 작가로서 평생 걸어오신 선배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면 그 칭호가 정말 잘 어울리지 싶습니다. 선배님은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등단한 후 1979년 첫 장편인 "죽음보다 깊은 잠"을 시작으로 많은 소설을 세상에 내놓으셨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비뚤어진 욕망을 다루거나 구도에 대한 간절한 갈망을 다루는 등, 선배님의 작품 세계는 참으로 넓고 깊었습니다. 발표 작품 수도 다른 작가들에게는 거의 '넘사벽'의 수준이었지요. 1993년 오랜 시대와의 불화 끝에 갑자기 절필 선언을 하고 집필 활동을 중단했던 3년여 동안을 빼놓고는 거의 매년 1권씩의 장편소설을 발표하셨습니다. 2013년 등단 40주년을 맞아 고향인 논산에 내려가 집필을 계속하던 선배님이 소설 "소금"을 발표하셨는데, 그것이 딱 40번째의 장편소설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어 온 국민의 인기를 끌게 되었고, 드라마와 영화로 재탄생된 작품도 무려 20여 편이 넘었습니다. "불의 나라", "물의 나라", "풀잎처럼 눕다", "죽음보다 깊은 잠", "마지막 연인", "미지의 흰새", "숲은 잠들지 않는다", "외등", "고산자", "은교" 등등 하나같이 흥행 화제작에 올랐지요.

  선배님은 늘 과분하다고 몸을 낮추었지만,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 걸맞게 상복도 많이 누리셨습니다. 대한민국문학상, 김동리문학상, 만해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유수한 문학상들을 연거푸 수상하셨지요. 그리고 작품 활동 외에도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상명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하며 후진들을 양성하고, 한국방송공사(KBS) 이사, 서울문화재단 이사장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의 언론 발전과 문화 창달에도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이처럼 빛나는 공적을 기려 남성총동창회에서도 당연히 선배님에게 '자랑스러운 남성인 상'을 수여하였고요. 

  그런데 선배님은 2016년 가을 무렵 여기저기서 '미투' 사건들이 터지는 와중에, 트위터의 어느 한 익명 고발자에 의해 난데없는 성희롱 논란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로 지목된 이조차 성희롱을 당한 적이 전혀 없다고 밝혔으니, 그야말로 실제 피해자가 없는 유일무이한 미투사건이었다고 할까요. 억울하기 짝이 없는 그 사건 이후 선배님은 깊은 충격에 빠져 아예 소설에는 손도 대지 않으셨지요. 그리고 오랜 칩거와 투병 생활을 거쳐 2021년 초 "구시렁구시렁 일흔"이란 시집을 내고, 작년에는 등단 50주년을 기념하여 "순례", "두근거리는 고요"라는 두 권의 산문집을 내셨을 뿐입니다. 엉뚱한 일로 '영원한 청년 작가'의 불꽃같은 창작 열정이 사윈 듯하여 너무나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그 불꽃이 다시 지펴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며칠 전 동문님 몇 분과 함께 충남 논산에 있는 ‘강경산 소금문학관’에 다녀왔습니다. 논산시에서 그 고장 출신인 선배님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문학관이지요. 반백 년 동안 혼신의 열정을 기울인 선배님의 작품 세계들이 다채롭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배님은 요즘 거기서, 당신의 시구(詩句)처럼, 문학관 앞을 유유히 흐르는 금강물 위에 소설을 쓰고 계신 것 같았지요. 

잠이 영 오지 않는 밤엔
잠든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
물 위에 쓰는 편지는 
후회가 없다

나는 요즘 물 위에 소설을 쓴다
(박범신의 시 ‘불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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