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교의 졸업생 수는 고1회 86명을 시작으로 9회까지 매 기수별로 1~200명 대, 10회부터 15회까지 300명 대, 16회부터 23회까지 400명 대, 24회부터 43회까지 5~600명 대 수준으로 계속 많아졌다가, 그 이후부터는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인구 감소에 따라 모교 졸업생 수도 점점 적어져 현재는 200명 대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 기수별로 동기들이 전부 참여한 전체 동기회가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지만, 아무래도 전체 동기들의 수효가 워낙 많고 보니 실질적으로 활성화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각 학급별로 구성된 작은 동창회, 즉 '반창회(班窓會)'입니다. 40~60명 규모로 이루어진 학급별 반창회는 오붓하게 어울리기 아주 딱 안성맞춤이지요.
지난 5월에 모교 졸업 50주년 기념행사를 치른 고24회(중21회) 동기회에서 "추억 안에서 다시 만나 흐르리"라는 제목으로 근사한 기념문집을 발간했습니다. 총 110여 명의 선생님과 동문 및 가족분들께서 기고하신 주옥같은 글들이 무려 760쪽이 넘는 46배판 책 속에 빼곡히 실려 있더군요. 무엇보다도 눈에 확 띄는 것은 고3때의 학급별로 구성된 반창회들의 각 활동기였습니다. 전체 600명 가까운 동기들을 60명씩 10개 학급으로 나눈 각 반별로 반창회가 구성되어 있는데, 삼일회, 이성회, 셋별회, 사성회, 삼오회, 삼육회, 삼칠회, 삼팔회, 삼구회 등 이름도 참 다양합니다. 그런데 우선 '셋별회'(샛별회가 아님)란 이름이 예사롭지 않더군요.
셋별회는 고24회 3학년 3반 동기분들 반창회의 이름이랍니다. 졸업하던 해인 1974년 봄에 창설 모임을 가진 뒤로 군 입대, 출향, 퇴직 등으로 만남이 소원했다가 1996년 겨울부터 다시 만나기 시작하였답니다. 동기들뿐 아니라 담임이셨던 이종근 선생님 내외분까지 매번 함께해오셨는데, 선생님이 결혼하신 것도 졸업 후에 동기들이 선생님에게 지금의 사모님을 소개해주고 데이트도 주선하면서 응원해준 결과라더군요. 그 후 동기들 각자 생활이 안정됨에 따라 동기들 가정을 차례로 방문하기도 하고, 부부 동반 야유회나 뮤지컬 관람 등의 문화 행사도 수시로 함께 즐겼으며, 해마다 '스승의 날' 사은회도 거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종근 선생님은 고8회 동문으로 모교와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후 모교에 국어 교사로 부임하셨습니다. 출석부를 보지 않고도 반 학생들 이름을 줄줄이 외울 정도로 제자사랑에 진심이었고, 수업하면서 칠판에 쓰던 분필이 부러져 튀어져나가기 일쑤일 만큼 정열적으로 강의를 펼치셨답니다. 기념문집에서도 24회 동기생으로 KBS TV의 인기 PD이었던 이영희 동문님이 선생님의 열강에 매료되어 대학진학을 국문학과로 선택했다고 회고하시는 걸 보면 선생님의 강의 모습이 충분히 상상되지요. 그 후 기막힌(?) 사정으로 모교를 그만두고 군산제일고를 거쳐 전주 상산고에서 근무하다가 정년 퇴직하셨습니다. 저는 24회 동기분들의 경조사 자리에서 선생님을 여러 번 뵈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지금도 지갑 속에 모교 제자들의 명단이 깨알같이 적힌 쪽지를 넣고 다니시는 걸 보았습니다. 평생을 제자들과 가까이 지내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시는 선생님이야말로 참다운 스승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셋별회 동기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김병문, 진유조, 채수민, 이헌익, 조성갑, 문교승 동문님 등 제게도 친숙한 얼굴들이 많았습니다. 비록 다들 칠순의 나이가 되어 살짝 주름진 얼굴과 센 머리칼이 기우는 세월을 말해주고 있지만, 하나같이 형형한 눈빛만큼은 '샛별'처럼 여전히 맑게 빛나고 있었지요. 기념문집에 기고할 것을 미리 대비하기로 한 듯이, 셋별회의 반백 년 역사를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글 속에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사람을 우리는 '애덕가'라고 한다"라는 고 박도식 신부님(전 대구가톨릭대 총장)의 말씀이 인용되어 있던데, 바로 이종근 선생님과 셋별회 동문님들이 그런 애덕가, 아니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