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이 당긴다’느니 ‘핏줄에 이끌린다’느니 하는 말은 몸의 핏줄이 같은 계통인 혈연의 친밀감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사람에게는 몸의 핏줄 말고도 또 다른 핏줄이 있지요. 태어나 살아온 고향과 나라의 핏줄이 있고, 또 배우고 깨우친 학교의 핏줄이 있습니다. 전자가 지연의 핏줄이라면 후자는 학연의 핏줄일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핏줄의 모성(母性)을 인용해 모향(母鄕), 모국(母國), 모교(母校)라고 말하겠지요. 자신의 핏줄을 제대로 알면 자기 정체성을 알게 되고, 그러면 자신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자신의 현재 모습에 자긍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핏줄은 공동체의 기본이 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핏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공동체 안의 다른 사람도 아끼고 배려하면서 사회적 책임감으로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국인이 한국이란 핏줄을 알아야 하고, 남성인이 남성이란 핏줄, 남성의 뿌리를 정확히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남성의 핏줄, 남성의 뿌리를 알려면 우선 남성 개교의 역사를 알아야겠지요. 일제강점기 때 호남지역 최대의 한국인 지주로서 익산에서 '화성(華星)농장'을 경영하고 있던 백인기 선생님은 일제의 침탈로 잠식당한 국력을 다시 굳건히 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육영(育英)의 길밖에 없다고 보아, 교육을 통해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고 민족의식을 배양할 것을 꿈꾸셨습니다. 그러나 1942년 7월 선생님은 그 뜻을 펴지 못하고 모든 재산을 육영사업에 써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유명을 달리하셨지요. 게다가 그 유지를 받들어야 할 영식 백명곤 씨도 같은 해 38세의 나이로 요절하시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3년 후 해방을 맞아 선생님의 미망인인 이윤성 여사께서 선부(先夫)와 자제를 한꺼번에 잃은 충격을 딛고 선부의 유지를 실현하기 위한 육영사업에 직접 착수하시게 됩니다.
이윤성 여사님은 당시 슬하에 있던 영손 백윤승 씨가 아직 미성년인 관계로, 가까운 친족 중에서 사위 정석호 씨(당시 남선전기회사 전무이사), 조카사위 이춘기 씨(당시 화성농장 지배인), 사촌시숙 백병정, 백경룡, 백남혁, 백남석 제씨, 그리고 지역 유지인 김병수 씨(당시 삼산의원 원장), 박지근 씨(당시 남선곡자회사 사장) 등과 함께 구체적인 사업 방안을 의논하셨습니다. 그중에 김병수 씨는 유명한 독립운동가이기도 하셨지요. 3.1운동 당시 세브란스 의전(현 연세대 의대)의 재학생으로 한강이남 최초의 만세시위인 군산3.5만세운동을 지원하고, 서울 남대문에서 만세시위를 직접 이끌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1년 3개월간 복역한 뒤, 의전을 마치고 익산에 ‘삼산의원’을 개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윤성 여사님은 여러 의견들을 듣고 숙의 끝에 화성농장 소재지인 익산에 인문계 남자 중학교를 설립하되, 집안 소유의 토지 중 절반에 해당되는 백여 만 평을 학교 측에 희사하기로 결단하셨지요. 그래서 1945년 12월 25일 남성중학교의 개교식을 먼저 갖고 1946년 3월 5일 교육당국으로부터 '재단법인 화성학원(華星學院)'으로 정식 설립 인가를 받게 되었습니다. 재단의 기본 재산으로는 여사님의 소유 토지 57만 8천여 평과 백윤승 씨의 소유 토지 44만 5천여 평 등 총 1,024,220평이 출연되었고, 재단의 초대 이사장으로 독일 베를린대학 출신의 정석호 씨가 취임하셨다가 1949년에 이춘기 씨가 이사장직을 승계하시게 되었지요.
그 후 학교의 교사와 시설물을 갖추어 나가시던 이윤성 여사님은 개교 10년 만인 1956년 8월 73세를 일기로 영면에 드셨습니다. 해방과 전쟁의 격동기 속에서 남성학교의 설립이라는 웅지를 꿋꿋하고 당차게 실현하고 떠나셨지요. 비록 몸은 떠나셨지만, 국민교육의 선각자요, 남성의 어머니로서 남성인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여사님의 별세 당시 학교장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그 영결식장에서 백남규 교장선생님이 눈물로 낭독하신 조사(弔辭)의 전문이 "남성25년사"에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백 교장선생님도 그로부터 불과 석 달 후인 같은 해 11월에 뒤이어 세상을 뜨시고 말았지요.
과연 인생은 덧없읍니다. 그러하오나 선생의 사업은 끊임없이 이어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낮같이 밝은 남성중의 터전에 방대한 새집이 이룩되어 언제고 희망의 상징인 한별 휘장을 붙인 양교 수천의 남자 학생들이 끊임없이 들어설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시지 못하고 가시는 선생은 얼마나 가슴이 맺히실까요? 선생이여! 오늘 선생의 영구, 이곳을 떠나시어 완산 태지를 거쳐 운수향으로 가시렵니다. 그러나 선생의 영은 늘 남성중 상공에 계시오리라. ("남성25년사" 150쪽에서 일부 인용)